하종강 |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몇 해 전 명절 무렵, 아파트 청소일 하시는 할머니와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간단한 선물이라도 챙겨드릴까 싶어 여쭈었다. “몇 분이 일하세요?” 할머니는 언뜻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으셨는지 가만히 계신다. 가는귀 드셨나 싶어 조금 큰 소리로 되물었다. “여기 아파트 청소 몇 분이 하고 계시냐고요?” 할머니가 답하신다. “나 혼자 세 동 담당하고 있는데요….”

 

수천억 쌓아두고 침묵하는 홍대

 

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냥 아파트 현관을 빠져나왔다. 그 뒤 며칠 동안 온통 그 할머니 생각뿐이었다. ‘명색이 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이라는 놈이… 아직도 그렇게 모르냐?’ 하는 반성으로 길을 걸으면서도 부끄러웠다. 그 뒤 명절이 될 때마다 작은 정성이라도 표시하는 일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래봐야 멸치, 양말 등 작은 물건들에 지나지 않았지만.

 
작년 말쯤, 유산균 발효유 열 개가 든 봉지가 아파트 현관 문고리에 매달려 있었다. 아내는 “잘못 배달 온 것이 분명한데, 먹을 수도 없고…” 난감해하며 냉장고에 잘 보관해두었다. 며칠 뒤 유산균 발효유 배달 아줌마를 아파트 화단 앞에서 우연히 만나, 물건이 잘못 배달된 것 같다고 했더니 아줌마가 답한다. “며칠 전에 청소 할머니가 열 개 사 가셨어요.” 나는 아내에게 “그거 우리가 고맙게 잘 먹으면 되는 거야…”라고 전화하다가 목이 메었다. 여당 정치인의 패악과 재벌의 횡포로 여론이 들끓고 있을 무렵이었는데 ‘이놈들아, 우리는 이렇게 산다’ 싶은 생각으로 한동안 마음이 뿌듯했다.

홍익대 농성장을 방문했을 때, 그 얘기를 해 드렸다. 나이 드신 분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아파트 청소 할머니가 생각나 목젖이 자꾸 묵직해졌다. 비슷한 연배의 할머니 한 분이 연방 고개를 끄덕거리며 얘기를 듣다가 살짝 눈물을 훔치셨다. 투쟁조끼를 입은 할머니 한 분이 “저녁밥이나 먹고 가라”고 붙들어 앉히면서 말씀하신다. “우리를 자꾸 할머니라고 부르지 마. 우리는 청소 노동자야.”

지성과 양심의 최후 보루라는 대학에서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권리를 내팽개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법은 간단하다. 대학 당국은 직접 교섭에 나서고, 정부와 국회는 간접 고용의 폐해를 줄이는 방안을 준비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홍익대 사건은 우리 사회 비정규직 노동자 권리 찾기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노동자들뿐 아니라 정부와 기업도 알고 있다는 게 오히려 문제다. 대학 당국이 교섭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 중에는 총자본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부담감이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자칫 이번 사건으로 학생들이 노동자 권리에 눈을 뜨는 ‘불온’한 사상을 갖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까? 대학이 신자유주의 경영 기법으로 재산을 축적하지 않고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사회적 책임의 산실로 거듭나게 될까봐 걱정하는 것은 아닐까?

간접고용 폐해 줄이는 방안 마련을

홍익대 노동자들에게 지원 물품을 보내고 싶으니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전화를 여러 통이나 받았다. 실제 농성장에는 배달 온 택배상자가 줄을 잇는다. 농성장을 방문한 학생이 저녁 마무리집회에서 인사말을 했다. “홍익대 총학생회를 대신해 저희들이 사과드립니다. 그런 의미로 김치를 담가 왔어요. 처음 만들어본 김치라 맛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 김치 맛이 다 들기 전에 꼭 승리하세요.”

야당과 시민들의 요구에도 침묵하고 있는 정부, 적립금을 수천억원 쌓아두고 교섭에 나서지 않을 뿐 아니라 노조 간부들을 고소·고발한 대학 당국과 이 귀여운 학생들 중 누가 더 옳은가?

1980년 퇴임한 홍익대 이항녕 총장이 한 일간지에 썼던 글을 대학 당국자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나는 한 끼의 점심값으로 수천원을 쓰고도 하루 종일 뼈아프도록 일하고 겨우 천원도 못 되는 삯을 받는 청소부 아주머니를 동정해 본 일이 없습니다. 이런 내가 무슨 지도층에 속한단 말입니까?”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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